군대가 만들고 군대가 끌어내린 황제들, '군인 황제 시대'
지난 이야기에서 235년 알렉산데르 세베루스의 죽음으로 시작된 3세기의 위기를 살펴봤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이 혼란기를 상징하는 이른바 '군인 황제 시대(Military Anarchy)'의 주요 인물들을 통해, 당시 로마가 얼마나 극심한 정치적 불안정을 겪었는지 들여다보겠습니다.
군인 황제 시대란 무엇인가
235년부터 284년까지 약 50년 동안, 로마 제국에는 무려 20명이 넘는 인물이 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원로원의 추대가 아니라 군대의 지지로 권력을 잡았고, 마찬가지로 군대의 배신으로 자리에서 끌어내려지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군인 황제 시대' 또는 '군사적 무정부 상태'라고 부릅니다. 평균 재위 기간이 2~3년에 불과했고, 심지어 몇 달 만에 살해당한 황제도 여럿이었습니다.
고르디아누스 3세, 십대에 즉위한 소년 황제
238년, '여섯 황제의 해'라 불리는 극심한 혼란을 거친 뒤 즉위한 인물이 고르디아누스 3세입니다. 그는 불과 13세의 나이에 황제 자리에 올랐는데, 어린 나이 탓에 실질적인 통치는 주변 참모들에게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241년 페르시아 원정 중 군대 내부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 사망하는데, 이는 강력한 군사 지도자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웠던 당시 로마 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데키우스, 기독교 박해로 이름을 남긴 황제
249년 즉위한 데키우스는 제국 전역에서 조직적인 기독교 박해를 단행한 것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는 제국의 위기가 전통적인 로마 신들을 소홀히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여겨, 모든 시민에게 로마 신들께 제사를 지내도록 강제하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최후는 허무했습니다. 251년, 고트족과의 전투에서 늪지대에 갇힌 채 전사했는데, 이는 로마 황제가 전장에서 직접 전사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됩니다.
발레리아누스, 적국에 포로로 사로잡힌 황제
3세기의 위기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260년에 벌어졌습니다.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패배해, 페르시아의 샤푸르 1세에게 포로로 사로잡힌 것입니다. 로마 황제가 적국의 포로가 된 것은 전무후무한 굴욕이었고, 그는 결국 포로 상태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로마의 국력이 얼마나 바닥까지 추락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꼽힙니다.
갈리에누스, 제국이 세 조각 나던 시기의 통치자
발레리아누스의 아들 갈리에누스는 아버지가 포로로 잡힌 뒤 홀로 제국을 이끌어야 했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제국은 사실상 셋으로 쪼개지는 지경에 이릅니다. 서쪽에서는 갈리아 제국이라는 독자적인 정권이 들어섰고, 동쪽에서는 팔미라의 여왕 제노비아가 사실상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갈리에누스는 이런 혼란 속에서도 군제 개혁을 통해 로마 재건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아우렐리아누스, '세계의 회복자'
군인 황제 시대의 혼란을 실질적으로 수습한 인물은 270년 즉위한 아우렐리아누스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 제국을 차례로 정복하며, 쪼개졌던 로마 제국을 단 5년 만에 다시 하나로 통일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업적 덕분에 그는 '레스티투토르 오르비스(세계의 회복자)'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다만 그 역시 275년, 자신의 부하들에 의해 암살당하며 이 시대 황제들의 공통된 운명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마무리
이렇게 짧게 훑어본 것만으로도, 군인 황제 시대가 얼마나 살얼음판 같은 시기였는지 짐작이 되실 겁니다. 소년 황제부터 적국의 포로가 된 황제, 그리고 쪼개진 제국을 다시 통일한 황제까지, 이 50년은 그야말로 로마의 존속 자체가 위태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 혼란 속에서 제국이 실제로 어떻게 세 갈래로 쪼개졌는지,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 제국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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